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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역사의 소리 <오대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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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1:34 | 조회 36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와 상원사 중간에 있다. 월정사 앞에서 비포장 길을 따라 남대 지장임과 부도군, 반야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영감사 가는 길이 나온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는 작은 길을 가면 끝 지점에 오대산 사고가 나온다. 큰 길에서 차로는 5분, 걸어서도 20여분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본래는 1605년 상원사에 실록을 보관하려 하였으나, 너무 좁아서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새로 지어 1 년 뒤에 실록을 옮겨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대산 사고에 들어서면 크게 두개의 권역에 3채의 건물이 보인다. 실록을 보관하던 2 채의 큰 건물이 아래쪽에 2단으로 들어서 있고, 그 위에 사고를 짓고 관리하는 대 큰 역할을 했던 영감사가 맨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돌담사이의 오살문을 넘어 들어가면 맨 앞의 2층 규모 건물에는 사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한 계단 높은 뒤쪽에는 똑같은 크기의 2층 건물에 선원보각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이를 통해 건물의 역할이 각각 다름을 금방 알 수 있다. 사각은 실록이 보관되어 있었고, 선원보각에는 왕실의 계보, 즉 족보가 보관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인 1788년에 단원 김홍도가 당시의 모습을 그림으로 또렷이 남겨 놓았다. 지금의 사고모습도 김홍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여기에 있었던 조선왕조실록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이곳에 보관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이곳의 중요성과 역사적 가치가 더욱 쉽게 와 닿을 것이다.

조선은 모든 왕대에 걸쳐, 재위 기간 중 있었던 일을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은 후세의 평가를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왕도 함부로 볼 수 없었으며, 바르게 기록하고 안전하게 잘 보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전쟁이나 화재, 천재지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여러 부 만들어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조선초기에는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성주·전주 등 네 곳에 사고(4대 사고)를 두고 실록을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다 소실되고 전주사고만 남게 된다.
임진왜란 후 전주 사고 본을 모본으로 실록을 다시 간행하였는데, 이때 기존의 서울 춘추관과 새로 설치된 강화도·태백산·묘향산사고 등 4곳에 실록을 1질씩 봉안하면서 원본에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만든 교정본을 별도로 오대산에 새로 사고를 지어 보관하게 된다. 이 교정본 실록들은 서지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실록의 편찬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실록을 비롯한 의궤, 왕실 족보 등 중요 문헌을 봉안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대산사고는 수직사라는 절을 함께 만들어 강릉과 양양 두 읍에서 뽑힌 승려 40명이 20명씩 교대로 지키게 했다. 이들을 수직승도라 했는데 이들은 사고 건물을 상시적으로 순찰하여 건물의 손상 여부를 살피고 비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포쇄·건물수리 등으로 서적을 옮겨야 할 때 이를 운반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오대산 사고에는 태조~철종까지의 실록 788책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빼돌려 일본 동경제국대학으로 가져가 버렸다. 그러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동경제대의 도서관에 불이나 대부분의 실록이 소실되는 참화를 겪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외부 대출로 도서관에 있지 않았던 74책이 무사했다는 사실. 광복직후 74책 중 27책(중종실록 20책, 선조실록 7책) 만 우리나라와 넘어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고 나머지 47책(성종실록 9책, 중종실록 30책, 선조실록 8책)은 일본 동경대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2006년에 전부 우리나라로 반환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동일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는 월정사 주지 퇴우 정념 스님과 봉선사 철안, 혜문스님 등이 일제가 약탈해간 실록의 환수를 위한 환수위원회를 결성하여 대대적인 반환운동을 펼친 결과였다.
오대산 사고는 6.25전쟁 때 절을 비롯하여 사각과 선원각이 모두 전소되었다. 주춧돌만이 남아 1963년 사적 제37호로 지정되었고 1992년에 사각과 선원각을 복원해 지금에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주소: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713-77
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713-77
입장료 :없음
찾아가는 길(자가용 이용 시)
: 영동고속도로 → 진부IC → 월정사 → 상원사방향 → 영감사




콘텐츠 담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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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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